콘텐츠 본문으로 바로 이동
left
번호 제목 작성자
17 사회적 관심이...
회복적 정의와 비폭력대화를 기반으로 한 회복적 생활교육-직무
co***

학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이 이해하고 동의해야만 좀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됩니다.
16 실천하기 힘들 듯
회복적 정의와 비폭력대화를 기반으로 한 회복적 생활교육-직무
na***

제가 학생부에 있으면서 학교폭력 사안이 접수 되면서 갈등이 심화되고 관계가 돌이킬 수 없어지는 것을 여러번 목격하여 이 연수에 끌렸습니다만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들고 정서적으로 힘들 것 같아 시도가 꺼려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야할 방향인 것은 맞습니다.
15 패러다임의 변화
회복적 정의와 비폭력대화를 기반으로 한 회복적 생활교육-직무
ha***

회복적 생활교육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변화이라는 말이 가슴에 남습니다. 꼭 기억하겠습니다...
14 유익한 연수였습니다.
회복적 정의와 비폭력대화를 기반으로 한 회복적 생활교육-직무
ch***

학교폭력 업무를 맡아 처벌, 응보적 학교폭력 대책을 보며 한계를 느꼈습니다. 다행히 교육부도 예방적, 회복적인 학교폭력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고 들엇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안내는 아직 없었습니다. 이 연수를 통해 회복적으로 어떻게 학생들과 함께 해야할지 알게되었습니다. 아직 학교 현장에 여러 한계가 있긴 하지만 이 작은 물길이 점점 큰 강을 이루고 학교 현장 분위기와 학생들을 변화시키는 큰 물줄기가 되길 소망합니다.
13 비폭력대화
회복적 정의와 비폭력대화를 기반으로 한 회복적 생활교육-직무
hy***

비폭력대화의 목적이 '이 말이 그 사람과 더 연결되는가?'
'솔직히 말하고 상대를 공감하는가?' 다시한번 새겨본다

12 생각과 언어를 바꾸는 기회
회복적 정의와 비폭력대화를 기반으로 한 회복적 생활교육-직무
ye***

응보적 정의의 한계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새로운 회복적 정의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생각이 바뀐 만큼 나의 말과 태도도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오랜 시간 굳어온 언어와 습관은 한 순간에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비폭력 대화가 나의 언어 습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와 우리반이 변화되길 기대해 본다.
11 이제야 조금씩 평화의 감이 오네요.
회복적 정의와 비폭력대화를 기반으로 한 회복적 생활교육-직무
eu***

오랜 사고와 언어 습관을 바꾸기가 정말 어렵다는 걸 매일 느낍니다. 책도 읽고 연습을 하는데도 잘 안 바뀌네요. 그런데 연수를 통해 그 동안 했던 여러 연습들이 정리가 되고 있어요. 이 연수가 끝나고 나면 제 태도와 표현이 한 단계 성장해 있을 거란 기대가 생깁니다. 우선 자기 공감을 잊지 말아야겠어요. 전 지금 공감이 필요해요! 도와주세요! 이렇게 서로 말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부서 내에서 가져보려고 해요~~^^
10 나를 돌아보는 기회
회복적 정의와 비폭력대화를 기반으로 한 회복적 생활교육-직무
go***

생활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기회인것 같다
9 새로운 시작
회복적 정의와 비폭력대화를 기반으로 한 회복적 생활교육-직무
ig***

회복적생활 지도느 말 그대로 프로그램이 아닌, 새로운 마음가짐의 시작인 된 것 같아 긷되기도하고, 한편으로는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확실한 건,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생각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는 점이다.
8 평화가 길입니다
회복적 정의와 비폭력대화를 기반으로 한 회복적 생활교육-직무
ba***

"평화로 가는 길은 없어요, 평화가 길입니다."
마음에 새기고자 책상에, 일기에, 그리고 도서관에 적어놓은 구절이다. 머리로는 그 구절들을 알았다고 생각했다. 나머지는 그것을 실천하는 것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길을 잃었다.

회복적 정의와 비폭력대화를 기반으로 한 회복적 생활교육, 원격연수를 신청하여 들었다, 받았다, 새겼다...어떤 단어를 선택해야 지금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어설픈 표현은 접어두고.

이 연수를 통해 길이 희미하게 보였다,고 쓴다.


'그는'이라는 정호승의 시인의 시가 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가 돌아간 사람이었다."로 시작한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의 창문을 두드리지 않는다는 절망감으로 읽을 수 있다. 비록 '그'라는 사람이 있어, 나를 사랑하고 나의 창문을 두드려준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아이들에게 이 시를 말하면, 아이들은 말한다. "시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요. 하지만, 저는 아무도 없어요."라고. 그 아이들도 길을 잃었을 것이다.

이제 아이들에게 말한다. "그는"을, "나는"으로 바꾸어 보길. 그리고 아이들과 다시 시를 읽는다.
"나는 아무도 그를 사랑하지 않을때 / 조용히 그의 창문을 두드리다가 돌아간 사람이었다."고.

사랑받지 못했음의 프레임에 갇혔을 때, 사랑할 수 있음의 프레임의 전환은, 삶을 다시 보고 느끼게 한다.

서론이 길었다. 이 연수가 비록 사람마다 호불호는 있겠지만, 나에게는 내 프레임을 리모델링하게 하였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부터,
내 선생님의 선생님의 선생님부터 이어져 온

응보적 정의, 생활 지도(훈육, 체벌, 구타, 욕설, 꾸중, 비난, 책망), 학생들에 대한 신뢰보다 얄팍한 나의 지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방적 소통과 수업, 경청보다는 개입을, 공감보다는 내 주장의 설득을, 존중하기보다는 존중받기만을 원하는 학교, 교사의 틀. 그것을 당연시하거나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바꾸려고 해도 어렵다고 포기한 그것들, 그 녹슨 갑옷들.

그 녹슨 갑옷에 대해, "그걸 입으니 평화롭니?"하고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연수 내내 수만 가지 질문이 떠올랐고, 수만 가지 생각을 했고, 새벽에 그 떠오른 생각들을 '마음'으로 느끼려고 일기를 썼다. 그리고 조금씩 벗어서 이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던,내 마음에 남아 있는 굳은 갑옷의 내피를 내려놓자고 나에게 말했다.

이 연수,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나이가 든 분들이 꼭 들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신념이 분명해서 확고한 믿음(?)을 지닌 분들이 들었으면 좋겠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길을 걸어온 분들이 들었으면 좋겠다. 이제, 교직생활은 할만큼 했으니 뭐,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들었으면 좋겠다.

그간 자신이 입은 옷을 '정의'의 기사도 복장이라고 생각하면서, 참으로 험난한 길을 걸어온 이 땅의 늙은 선생님들, 아버지, 어머니들이 이 연수를 받고, 이미 녹슨 마음의 갑옷을 벗고 '평화'의 알몸으로 아이들과 만났으면 좋겠다. 아니, 자기 자신과 만났으면 좋겠다. 어쩜, 내용에 공감할 수 없어 화가 날 수도 있겠지만, 그 화만으로도 '낯선 상황의 자신과 조우'한 것이리니.

다시 길 위에서 나는 묻는다.
"나는 평화인가?"

이 화두를 다시 잡고, 길을 걷는다.